1906∼1980. 양화가. 호는 청구(靑駒). 충청남도 아산 출신.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일본에서 서양화를 처음 배우고 돌아온 고희동(高羲東)에게 그림지도를 받았다. 1931년 동경에서 구본웅(具本雄)·김응진(金應進) 등과 백만회(白蠻會)를 조직하였으며, 1932년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목일회(牧日會) 창립에 가담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약칭 鮮展)에서 1회의 특선과 3회의 입선을 하였으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國展)에서는 1953년 이래 초대작가·심사위원·심사위원장·운영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대한미술협회 위원장에 피선되었으며, 1958년에는 목우회(木友會)를 창립하여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취임하여 학장을 역임하였으며, 1971년 정년퇴직 후에는 명예교수로 있었고, 같은해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에 피선되었다. 1938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7회에 걸쳐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미술교육 등 미술문화발전에 끼친 공로로 서울시 문화상과 문화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그는 사실적 자연주의에 충실한 풍경화를 즐겨 다루었는데, 화풍의 변화가 대체로 1960년을 중심으로 전후 2기로 나누어진다. 1960년 이전의 전기에는 아카데믹한 사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정확한 데생력과 건실한 색감을 바탕으로 하는 화풍을 구사하였다. 후기에는 페인팅 나이프의 짧은 수직선들이 화면을 점진적으로 뒤덮는 일종의 인상파적 점묘법(印象派的點描法)을 통하여 화려한 색감의 화풍을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1934년작인 〈꽃다발 없는 정원〉, 1966년작인 〈교회보이는 풍경〉, 1968년작인 〈흑석동 풍경〉 등이 있다.